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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사망일 기념관 생가 동상 영화 암살

by 도나도나킴 2024. 10. 27.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자 때로는 논란이 많은 인물로도 분석되고 다양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며 이번 여러 정보를 글에서 자세히 소개해 드립니다.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1. 박정희 대통령 프로필 생가 기념관 동상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입니다.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로에 위치한 고향입니다.

 

 

1963년 12월 17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대한민국을 이끌었습니다. 본관은 고령이며, 그는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 군 경력을 쌓았습니다.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이후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대통령직을 연임하며 재임 기간 동안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피살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정당은 민주공화당에 속하며, 그의 부모는 아버지 박성빈과 어머니 백남의입니다. 박정희는 두 차례 결혼하였으며, 첫 번째 아내는 김호남으로 1936년부터 1950년까지 함께했고, 두 번째 아내는 육영수로 1950년부터 1974년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자녀로는 아들 박지만과 딸 박재옥, 박근혜, 박근령이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무교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와 관련된 여러 행보를 보인 바 있습니다.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며, 그의 통치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 과정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박정희 생가는 박정희 대통령이 20여 년간 살았던 곳으로, 1993년 2월 25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은 구미의 주요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특히 보수 정치인들의 참배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 또한 이곳에서 개최됩니다.

 

 

2016년 11월 30일 방화로 인해 추모관이 전소되었으나, 약 9천만 원의 복구비를 들여 복원되었습니다. 생가 내 추모관에는 실제 장례 때 사용된 사진이 아닌, 테일코트 차림에 무궁화대훈장을 패용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는 서울현충원 정문에서 직선 방향으로 맨 안쪽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당대 유명한 지관 지창룡이 터를 잡았다고 전해집니다.

 

묘소 앞에서는 장군 제1묘역과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한눈에 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순수 매장한 무덤 규모 기준 가장 큰 무덤으로, 국가원수 묘소 중 가장 작은 김대중 대통령 묘소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박정희 대통령기념관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로 386에 위치한 대통령 기념관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일생과 업적을 기리는 곳입니다. 1997년 15대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의 국민통합 공약에서 시작되었으며, 재단법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건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국가보조금 지원 계획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착공이 2002년으로 미뤄졌고,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국고보조금 회수 명령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의 행정소송 승소로 2010년 공사가 재개되어 2012년 마침내 개관했습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과 1979년 10월 26일에 멈춰진 달력, 그리고 그의 전신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에는 영유아 놀이 시설 '어깨동무스토리움'과 '어깨동무 교육장', '6737 카페', '박정희도서관', '어깨동무 도서관'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개관 초기에는 도서관 개방이 늦어졌지만 박근혜 정부 때부터 운영을 시작했고, 2016년부터 약 3년간의 전면 보수를 거쳐 현재는 단체 관람객에게 안내 관광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은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입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고 존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상 건립이 당연한 일이지만, 독재 정치와 인권 탄압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동상 자체가 불편한 존재입니다. 현재 전국에는 여러 곳에 박정희 대통령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 상모동 생가 앞에 있는 동상입니다. 높이 5m의 이 동상은 1980년에 건립되었으며, 2016년에는 생가 방화 사건으로 추모관과 함께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복원되어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2.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및 영화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암살의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의혹 중 하나는 바로 미국과 CIA의 개입설입니다.

 

김재규는 10·26 사태 발생 며칠 전,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을 만났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암살 배후 의혹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김재규는 군사재판에서 악화된 한미관계 개선을 거사의 동기로 내세웠지만,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은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 역시 김재규의 주장을 "쓰레기 같은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의혹을 완전히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건 당일,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기 직전 글라이스틴 대사를 만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김재규와의 마지막 만남이 9월 26일이었다는 글라이스틴 대사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가 왜 박정희 대통령 암살 당일 김재규를 만났는지, 그리고 그 사실을 왜 평생 동안 숨겨왔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 당시 청와대 의무실장이 아닌 미국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정부가 이를 왜 비밀에 부쳤는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재규는 재판 중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으며,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에게 미국 측의 연락을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미국 개입설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려 했을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핵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 중 일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미국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들은 당시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미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미국 개입설은 여러 정황 증거들로 인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암살의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의 삶과 업적, 그리고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며 꾸준히 제작되어 왔습니다. 2024년 하반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주제로 한 두 편의 영화가 개봉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먼저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는 뮤지컬 형식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으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헌신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 중공업 발전, 수출 주도 산업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그의 주요 업적들을 뮤지컬 음악과 춤을 통해 역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젊은 배우들의 열연과 웅장한 스케일, 감동적인 스토리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또 다른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해방 정국부터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까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합니다.

 

특히 육영수 여사의 소리 없는 봉사와 희생적인 삶을 부각하며, 그녀의 서거 50주기를 기리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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