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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김장하 선생 문형배 영화 책 프로필 가족 장학생 종교 한의원

by 도나도나킴 2025. 4. 8.

문형배 헌법재판관과 함께 최근 김장하 선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장하 선생

 

 

1. 김장하 프로필 나이 가족 종교

 

김장하는 1944년 1월 16일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장산리 노천마을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교육인이며 시민활동가입니다. 2025년 만 나이 기준으로 81세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며, 호는 남성입니다.

 

 

호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는데, 남두육성이 수명을 맡은 별이라는 속설처럼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김장하 선생은 설명했습니다.

 

 

평생 많은 기부를 했지만 정치인이나 선거 자금, 개인적인 사업 자금 등은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남성당한약방 대표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와 깊은 연을 맺어왔고, 학교법인 남성학숙 이사장으로서 명신고등학교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남성문화재단 이사장과 진주신문 이사장,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어왔습니다.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시절 전교조 해직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교사도 해고하지 않았던 일화도 있습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과 진주문화사랑모임 부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으로서 인권과 지역 문화 발전에도 기여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후원회장,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영남대표, 지리산생명연대 공동의장 겸 상임의장, 진주오광대보존회 이사장,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의 다양한 현안에 헌신해왔습니다.

 

 

그의 삶과 활동은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지역을 위해 헌신해온 어른의 표상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즐겨 탈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집 대신 한약방 건물 3층을 사용했습니다. 해외여행 경험도 거의 없으며, 2005년 6.25 전쟁 때 사망한 줄 알았던 친형이 살아있다는 연락을 받고 평양을 방문한 것이 유일한 여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어른 김장하가 교양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며 지역 방송사 프로그램으로는 최초로 백상예술대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평소 신념대로 시상식에는 불참했으며, 제작진이 대리 수상했습니다. 2023년 11월에는 극장판 어른 김장하가 전국 동시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부인과 4남매, 그리고 손주들과 함께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장하선생은 특별히 특정 종교를 믿는 신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김장하 선생 생애 문형배 장학생 책 영화 한의원

 

 

김장하 선생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일하며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홀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하여 1963년 사천군 용현면 석거리에 한약방을 열었고, 9년 뒤인 1972년 진주시 동성동으로 이전하여 남성당한약방을 50여 년간 운영하다 2022년 5월 말 은퇴하며 문을 닫았습니다. 한약방 운영으로 얻은 수익은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지역 사회를 위한 지원에 힘썼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평생 동안 다양한 사회운동과 자선사업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 독지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하고, 이듬해 1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하여 명신고등학교를 세워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체육관과 도서관 등 학교 시설을 완비한 후 1991년 국가에 기부했습니다.

 

 

20대 시절부터 어려운 학생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현재까지 그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여성, 인권 등 지역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진주 지역의 여러 문화예술 단체, 언론, 역사, 환경 운동 등 시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조건 없이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1990년대 시민 주도로 창간한 옛 진주신문의 주주 및 이사로 참여했으며, 1995년부터 27년간 진주가을문예를 후원했습니다.

 

경상국립대학교 최초의 기부 건축물인 남명학관 건립을 주도했으며, '진주문화를 찾아서' 문고 발간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진주문화연구소 설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으며,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꾸준히 장학 사업을 진행하는 등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어려움을 겪던 지역 서점인 진주문고를 두 차례나 지원하여 지역 서점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여성평등기금 조성을 통해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지원 등 여성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극단 현장이 현재 위치에 자리 잡을 때와 진주여성민우회 창립 시에도 김장하 선생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남명학, 진주오광대, 진주솟대놀이가 재조명되는 데에도 그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2000년에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꾸준히 후원을 이어오다 2021년 재단 해산 당시 남은 기금 34억 원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기금재단에 기탁하며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2019년 1월에는 김장하 선생 본인도 모르는 생일잔치에 진주 시민 사회 각계각층 인사 120명이 모여 그의 삶을 축하했습니다.

 

2022년 5월 은퇴 후 평범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폐업한 남성당한약방 건물은 진주시에서 복합문화공간인 ‘진주 남성당교육관’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으며, 2025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22년 연말 MBC경남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큰 호평을 받아 설 연휴에 전국 방송으로 재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김장하 선생을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그는 한약업에 종사하며 1963년 사천에서 개업한 이후 꾸준히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했으며, 1973년 진주로 이전하여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시민 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했습니다.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은 높은 매출을 올리는 곳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서 얻은 수익은 시민 운동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진주 시민 운동계에서는 '김장하'라는 이름이 후원을 아끼지 않는 어른으로 통하며, 재정적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남성당한약방이었습니다.

 

 

특히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판결 이후 문형배 헌법재판관과 김장하 선생에 얽힌 어린 시절 미담이 다시 주목받았는데,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2024년 연말에도 문 재판관에게 '단디해라'라는 짧은 안부 전화를 건넨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마친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2019년 인사청문회에서 김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후원 활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며,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꺼려 김주완 기자가 7년 넘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여 책을 썼을 정도입니다. 김 기자는 김장하 선생과 동행하며 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줬으면 그만이지: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김주완 저, 피플파워, 2023): 김장하 선생의 삶과 철학, 나눔의 정신을 깊이 있게 다룬 취재 기록입니다.

 

 

선생의 생애, 장학 사업, 학교 설립 및 헌납, 공동체 지원 등 다양한 활동과 함께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소탈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장하 선생이 학교를 설립하고 국가에 헌납한 이유는 1991년 8월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퇴임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자신의 억울함을 후배들이 겪지 않기를 바랐고, 한약업으로 번 돈은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얻은 것이기에 자신을 위해 쓰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학교 설립을 결심했습니다.

 

김장하 책

 

따라서 학교는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하며, 공립화하여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겼습니다.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지만 언론 인터뷰를 피하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 첫 민선 진주시장 선거 당시 시민사회단체가 그를 시민 후보로 추대했으나, 그는 후보 제안을 하러 온 시민단체 대표들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경상남도문화상이나 진주시문화상, 경남교육대상을 추천하려 했을 때도 극구 사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평등 사업과 민족문제연구소에도 오랫동안 후원해왔다는 이유로 일부 극우 세력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는 한 극우 성향의 인물이 김장하 선생에게 전화하여 비난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는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과거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가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고 없이 한약방을 방문하여 만남을 가졌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평소처럼 믹스커피를 대접하며 편안하게 대화했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후 김장하 선생과의 만남을 주선한 보좌관에게 훌륭한 분을 만났다고 칭찬했으며, 사망 후 봉하마을 묘역에 박석을 남겼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은 문형배 재판관과 함께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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