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정치인이면서 국가정보원장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한바 있는 박지원 국회의원 프로필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자세히 정리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1. 박지원 의원 프로필
박지원 의원(1942년 6월 5일~)은 제14대, 18대, 19대, 20대, 2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82세의 나이입니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나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미국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선친 박종식과 함께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잠시 거주한 후, 1961년 목포에서 문태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박 의원은 제36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1999년 5월부터 2000년 9월까지 재직하였으며, 제14대 국가정보원장으로 2020년 7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역임하였습니다.
그의 주요 학력으로는 광주교육대학 초등교육학 전문학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상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수료, 그리고 목포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조선대학교 명예 경제학 박사, 목포해양대학교 명예 정치학 박사가 있습니다.
현재 박 의원은 제2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더불어민주당 장세일 영광군수 후보 선거대책위원장과 해남군·완도군·진도군 지역위원장으로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형 2명과 여동생 1명이 있었으나 모두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선자와 결혼했으나 2018년에 사별하였으며, 두 명의 딸이 있습니다.
두 자녀는 모두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의 전재산은 약 29억 3,306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눈은 수십년전에 녹내장으로 왼쪽 눈을 실명하여 의안 시술을 하였습니다. 녹내장이 오면 다른 쪽 눈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해왔다고 합니다.
주요 약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6.15남북정상회담 특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 실장,
김대중 대통령비서실 실장,
민주당 원내대표(2회),
민주당 비대위원장,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국가정보원 원장,
(현)민주당 고문,
(현)5선 국회의원/ 전남 해남완도진도
2. 박지원 의원 생애 및 정계 활동 선거 이력
사업가로서의 경력은 1970년에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럭키금성상사에서 근무하던 중, 1972년 11월에는 미국 뉴욕지사에서 지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박 의원은 사업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생활비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9년 5월, 그는 미국 교포로서 수출유공자로 인정받아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1984년에는 김대중이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 등의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정계 복귀에 맞춰 미국 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하였습니다.
정계에 발을 들인 박 의원은 1992년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제14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1995년 9월에는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직을 맡았습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의 김문수에게 패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에 선출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1997년-1998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1998년-1999년), 문화관광부 장관(1999년-2000년),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2001년) 등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습니다.
1999년 6월 4일에는 장면 총리 서거 33주년 기념일에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하고 장면 전 총리의 포천묘소를 국립묘지로 이장할 것을 제안했으나, 여건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99년 8월에는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산업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02년에는 대통령비서실장에 취임하였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박지원 의원은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직전 불법 대북 송금 의혹에 연루되어, 송두환 특검팀에 의해 2003년 6월에 구속되었습니다.
이후 2004년 11월 대법원에서 '현대비자금 150억 원 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으나, 2006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대북 불법 송금과 대기업 자금 수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7년 2월 9일, 특별사면으로 형 집행이 면제되었습니다.
석방 후 2007년 3월에는 김대중 평화센터의 이사장으로 선임되었고, 같은 해 12월 복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복권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배려에 따른 것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전남 목포시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12년 만에 원내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8월 13일에는 민주당에 복당하였고, 이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했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경북교육감 선거와 관련된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보도한 방송사를 고소하는 공방을 벌였습니다.
2010년에는 서울 체험 행사를 지원하였고, 10월 30일에는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11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2010년 12월에는 한나라당의 2011년 예산안 강행 처리 이후 개헌 반대 의견을 표명하며 정치적 도의에 대한 언급을 하였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2014년 12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지만, 문재인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비판을 자제하고 '진보 정권 재창출'을 주장하며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21대 총선에서는 민생당 후보로 전남 목포시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후보에 패하여 낙선했습니다.
그 후 방송 패널로 활동하였으며, 2020년 6월 1일에는 단국대학교 석좌 교수로 임명되어 대북 관계, 국제 정세, 국내 정치 문제를 강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 7월 3일, 박지원은 제35대 국가정보원장으로 지명되었으며, 2020년 7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재가를 받아 국가정보원장에 취임하였습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나이가 많아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민생당 복당 의사는 없으며 더불어민주당 복당 가능성은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이재명 대표의 강력한 추진으로 복당이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원래 지역구 현역인 윤재갑 전 의원이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컸으나, 민생당 출신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박지원 전 원장은 2024년 3월 13일 경선을 통해 공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보수 정당 후보를 내세우며 선거에 임했으나 낙선이 계속되었고, 이번에는 곽봉근 당 국책자문위원회 고문을 공천했습니다.
선거 결과, 박지원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습니다.
박 후보는 92% 이상의 득표율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인물이 되었으며, 진도군의 재외투표에서는 17표 중 17표를 획득하박지원 의원 프로필여 득표율 100%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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